안녕하세요, 오랜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에디터 E입니다. 일상에서 벗어나 어릴 때 추억의 장소에서 추억의 음식을 먹으며 여유를 만끽하다 보니 돌아올 땐 집에 가기 싫다고 눈물짓는 사태까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고단하다 할지라도 일상의 기쁨과 감사도 겪어봤기에 그것들을 누리러 돌아왔습니다. 뉴스레터 쓰는 것도 제겐 일상의 기쁨이랍니다. 😉

오늘도 우리에게 꼭 필요할 한 장을 꺼내 왔어요. 이제 확인해 볼까요? 💌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정의 그 이상이에요

수년 전에 선처를 바라는 소년범에게 호통치고 선고하는 천종호 판사님 짤이 인터넷을 휩쓴 적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느낀 것은 속시원함이었습니다. 인정에 호소해서 위기(처벌)를 모면하려는, 여전히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가해자들의 행태와, 그렇게 키운 부모를 향해 쓴소리를 내뱉는 판사에게 환호했지요. 그의 거침없는 판결은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그가 법정에서 그렇게 호통을 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단순히 사람들의 속을 뻥 뚫어주려고 그러는 건 아닙니다. 아이들이 바른 길을 가기 바라는 진심 어린 마음도 있겠지만 여기엔 그가 법조인으로서 해 온 법, 정의와 선에 대한 고민이 근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고민과 지향성을 담은 책이 있습니다.

법은 정의의 최소한이다. 따라서 법을 탐구하려면 정의와 선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가 필요하다. […] 법을 의지해 삶을 살아가는 법조인으로서 선과 정의와 법의 의미에 관해 얄팍하지만, 기본적인 이해라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프롤로그_법이 정의가 되고,정의가 사랑이 되는 공동체를 꿈꾸다

우리가 법을 지키는 이유는 단순히 불이익이나 이해관계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성품을 창조의 텔로스(목적)에 맞게 조율하고, 그러한 성품 상태에서 그 텔로스에 합치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자유를 이루기 위함이다. 이것이 진정으로 우리가 법을 지켜야 하는 이유다. 이로 인해 우리는 행복에도 이를 수가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시편 1편을 다시 써 보면 아래와 같다. 

“행복한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함으로써 하나님의 법을 그의 영혼에 두며 그의 마음에 기록하여 자유를 누리는 자다.”

24장 왜 법과 도덕을 지키는가

민주주의 정치하에서 이루어지는 공동체는 호혜성과 연대성을 바탕으로 하는 정의의 실현, 다시 말해 인간과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대우받은 만큼 대우해 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의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정의의 공동체는 ‘계약’(사회 계약)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기독교가 지향하는 언약을 바탕으로 하는 공동체는 ‘언약’을 전제로 정의의 실현을 넘어 희생과 용서를 전제로 하는 ‘사랑의 공동체’다. 그래서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매킨타이어는 기독교 공동체를 ‘특별한 종류의 역사를 가진 공동체’라고 한 것이다.

미국의 기독교 작가 짐 월리스의 말처럼 “우리는 새로운 사회적 계약, 더 나아가 사회적 언약을 만들어 갈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정의의 공동체’에 발을 붙이고 ‘사랑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사람들이다. 정의의 공동체를 무시한 채 사랑의 공동체를 지향할 수는 없다. ‘정의는 사랑의 최소한이고, 사랑은 정의의 최대한이다.’ 우리 삶은 정의를 무시한 채 사랑으로 비약할 수 없다. 각자에게 주어진 몫의 정당한 분배 및 재분배와 분배된 몫의 배타적 향유를 이상으로 하는 정의가 전제되지 않으면, 희생과 용서로 이루어진 사랑의 공동체를 이룰 수 없다. 구약성경에서 가장 강조되었던 ‘공의와 정의’가 폐기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완전하게 되었다고 할 것이고, 구약성경의 ‘율법(토라)’은 폐기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온전케 되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도 호혜성을 넘어 연대성을 지향하는 정의를 실현해야만 한다. 일반 사회에서 말하는 정의에 담는 내용물과 기독교 공동체가 정의에 담는 내용물에는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차이는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좁혀질 것이다. 자신과 교회 조직에 갇혀 세상과 등지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발 붙인 곳에서 공의와 정의를 세우며 사랑으로 충만한 공동체, 다시 말해 ‘하나님 나라’의 선을 실현해 나가야 한다.

26장 법과 정의와 호의 그리고 사랑

천종호, 『천종호 판사의 선, 정의, 법』

고백하자면요, 저는 이 책을 3번 읽었습니다. 감명 깊어서 반복해서 읽은 게 아니라 너무 어려워서요. 마지막으로 읽은 후엔 읽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전히 어렵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저자의 깊은 고민을 한층 더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의와 법에 대한 이해를 넘어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삶은 어떤 건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유명해진 소년범 아이들을 호통치는 상황으로 돌아가자면, 그가 바라는 건 정의 실현, 즉 “인간과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대우받은 만큼 대우해 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것에 만족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천종호 판사는 아이들을 향해 호통을 치고 부모가 아이들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하게끔 함으로써 “정의의 실현을 넘어 희생과 용서”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판사가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그렇게 훈계를 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그것은 특권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재판에 나오는 아이들이 잘못한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을 넘어 더 나은 삶을 지향하길 바랐습니다. 아이들을 대면하는 3분의 짧은 시간 사이에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마음을 갖길 바랐습니다.

책을 덮으며 그가 바라고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를 통해 우리에게 미쳤다는 생각에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의를 넘어 하나님 나라의 선을 실행하는 삶을 바라고, 나도 누군가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떠올리게 하고 따르게 하는 삶을 살아보고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