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사는 게 고단한 에디터 E 인사드립니다. 다른 이유는 아니고 무더위 때문에 삶이 고단합니다. 야외에서 열 발자국 걷는데도 왜 이리 힘겨운지 말이에요. 이게 다 지구 온난화 때문이고, 지구 온난화를 촉발시킨 인류 문명의 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면 속으로 회개하면서도 빨리 문명의 발명품 에어컨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고 싶기만 합니다. 이런 더위를 피해 시원한 바람이 부는 바닷가든 어디든 떠나고만 싶어집니다.

그렇지만 오늘도 어디서든 읽고 싶어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할 한 장을 꺼내 왔어요. 이제 확인해 볼까요? 💌

바울이 이번 여정의 가이드예요

회사로 오는 길엔 언제나 CGN 건물이 먼저 보입니다. 그리고 한동안 CGN  전광판에는 <바울로부터>가 게시되어 있었죠. 신학자이자 선교사인 최종상 저자가 바울의 삶과 사역 그리고 신학의 줄기를 따라가는 10부작 다큐멘터리였습니다. 누군가의 등떠밈과 반 자의로 성경통독을 하기도 했고, 책별 성경공부도 오래 했고, 기독교 역사도 공부할 만큼 했다고 할 수 있지만, 사도 바울이라는 한 사람의 여정을 통해 기독교 초기를 간접 경험하고 복음이 사람과 공동체를 변화시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매우 신선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영미권에서 예수님에 관련한 영화나 TV 시리즈가 흥행하기는 했지만 역사적 사실보다는 스토리텔링에 더 집중할 수 밖에 없는 장르이죠.

10부작이라는 장편 다큐멘터리임에도 사도 바울의 선교 여정과 복음을 향한 열정을 다 담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두란노에서 무려 장장 456쪽에 달하는 동일한 제목의 책이 나왔습니다. 😅 ‘세상에 이걸 어떻게 다 읽어?’ 하는 순간, ‘어머, 벌써 반이나 읽었어?’라고 느낄 만큼 이 책은 몰입도가 높았습니다. 그 중 제가 흥미롭게 느꼈던 부분을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일루리곤 방문 사역

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 자기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다고 알렸습니다(롬 15:19). 하지만 누가는 바울이 일루리곤에 갔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모든 전기 작가는 주인공의 삶에서 기록할 부분을 취사선택하고 집중적으로 삶의 여정을 서술해 가기 때문에, 일루리곤이나 아라비아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해도 누가를 비난할 수는 없겠습니다.

[…] 바울이 언제, 어디서 일루리곤에 다녀왔을지 재구성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루리곤에 갈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경로는 데살로니가를 출발하여 에그나티아 가도를 따라 서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2차 선교 여행 중에는 데살로니가에서 일루리곤에 갔다 올 수 없었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 유대인들의 공격을 받아 급히 베뢰아로 피신했고, 베뢰아에서도 배를 타고 아덴으로 급히 피신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를 쓰기 전에 이미 일루리곤을 다녀왔으므로, 3차 선교 여행 시 에베소를 떠나 고린도로 가는 길에 마게도냐를 방문했을 때 거기서 일루리곤에 갔다 왔을 가능성밖에 없습니다.

[…] 로마서에서 일루리곤을 이야기하면서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라는 이사야 52장 15절 말씀을 곧바로 인용한 것으로 보아, 이미 말씀을 몇 번 들은 마게도냐에 오래 있기보다는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일루리곤으로 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롬 15:19-21). […] 일루리곤에서 얼마나 오래 사역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바울 일행의 전도로 적어도 한두 교회가 세워졌을 것입니다. 시기는 주후 56년 여름으로 보입니다. 일루리곤에서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해안선과 인접한 지역이 달마디아 속주입니다. 나중에 디도가 달마디아로 간 것을 보면(딤후 4:10), 바울과 동역자들이 마게도냐와 달마디아 사이에 낀 일루리곤에도 복음을 전했을 것은 당연합니다.

한 가지 더 추측해 볼 부분은, 바울이 일루리곤으로 갔을 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동행했을 가능성입니다. 이 부부는 2차 선교 여행 끝에 바울이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에 올 때 같이 왔고, 바울이 수리아 안디옥으로 떠나고 다시 돌아올 때까지 에베소에 남아 가택 교회를 인도하고 있었습니다(고전 16:19; 딤후 4:19; 행 18:19, 26). 그러다가 바울이 에베소를 떠날 때 동행하여 마게도냐까지 왔다가 일루리곤과 디라키움을 거쳐 로마로 돌아간 것으로 보입니다. 글라우디오를 이어 황제가 된 네로가 추방당한 유대인들에게 돌아와도 좋다는 칙령을 주후 54년에 발표했기에 이 부부가 로마로 돌아갈 환경이 조성되었던 것입니다.

최종상, 『바울로부터』

2000년 전 존재했던 인물의 여정을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성경의 내용과 그동안 모은 역사적 정보를 토대로 큰 그림을 그리고, 빈 부분들을 상식적으로 추론해 나갈 뿐이죠. 저자는 그 과정을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관점에서 풀어나갑니다. 그렇기에 성경의 단 한 구절에서만 언급된 일루리곤에 복음이 전해지는 상황을 독자인 저도 그려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일루리곤 방문 사역의 목적을 로마서를 토대로 제시합니다.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하고 듣지 못한 자들을 위해 이미 복음이 전해졌던 마게도냐가 아닌 복음을 모르는 일루리곤으로 갔을 거라는 겁니다. 또한 일루리곤 여정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동행했을 거라고도 추측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후 동선도 추론해 봅니다.

흥미로웠던 점은 일루리곤에 복음이 전해지고 여러 바울의 동역자들이 한 번의 방문이 아닌 수 차례의 후속 방문을 통해 복음이 꾸준히 열매맺음이 제 눈앞에서 펼쳐진 점입니다. 저자는 기록에 근거해 일루리곤의 사역을 담백하게 재구성했지만, 저는 읽는 중에 바울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미 복음을 알고 그를 맞아줄 사람이 있을 마게도냐가 아닌 아무도 예수를 모르는 곳으로 선뜻 움직인 바울의 행동력과, 그 원천이 말씀에 근거했다는 것이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그저 그의 행적의 기록 정도로 치부했던 한 구절이 이렇게 상세하게 재구성 될 수 있고, 그 안에서 바울과 동역자들의 쉼없는 선교의 열정을 깨달을 수 있다니요. 통독할 때나 성경공부 할 때는 알아채지 못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저자는 “벽난로가 정겹게 불타는 거실에서 몇 분을 모시고 차분히 설명해 드리는 마음으로 존칭”으로 기술했습니다. 그 의도가 저에게 제대로 전달된 것 같았습니다. 바울을 바라보는, 바울을 통해 전해지는 복음의 힘을 발견하는 저자의 의도가 책을 읽으면서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전해지고 우리 또한 그렇게 복음을 전할 책임이 있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구독자님, 바울의 스펙터클한 삶의 여정을 함께 훑어보지 않으시겠어요? 최종상 선교사님과 벽난로가 아닌 시원한 에어컨이 켜진 거실에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듣는 마음으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