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지만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아무리 말씀을 보아도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나를 버리시지 않는다고 했는데 버림당한 것 같아 더 이상 기도하고 싶지도, 말씀을 보고 싶지도 않습니다. 어쩌면 좋을까요?
▲ 단단히 어둠 속에 빠진 겁니다. 영적인 터널에 갇힌 겁니다. 그런데 누구에게나 이런 시간이 옵니다. 영적인 대승을 거둔 엘리야조차 어둠 속에 빠져 차라리 나를 죽여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절대로 내 감정, 내 상황, 내 기분에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은 철저히 말씀에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은 순간에도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는 말씀이 기억나야 합니다. 그 말씀이 내 안에 있는 한 넘어지지 않습니다.
『최근에 동성애자였던 미국의 대학교수가 성경을 읽다가 회심하고 간증한 일이 있습니다. 그분의 간증 중에 제 머릿속에 박힌 한마디가 있습니다. 바로 “성경을 세 번 읽었더니”입니다. 이분은 동성애를 반대하는 그리스도인들과 맞서기 위해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세 번 읽고 나니까 자기 안에서 성경이 커지는 것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실망할수록, 낙심될수록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저는 성경을 다섯 번 읽고 나서 하나님이 옳으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일곱 번 읽고 나서는 내가 말씀을 묵상하지 않는 한 나의 모든 생각이 악할 뿐임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안 느껴진다면 그 기분에 젖어 있지 말고 말씀을 읽으십시오. 그리고 두 손을 들고 대적기도를 하십시오. “나를 낙심케 하는 악한 영은 떠나라, 나를 넘어지게 하는 사탄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하노니 물러가라” 하고 대적해야 합니다. 내 목을 조르고 팔을 비트는 사탄에 결연하게 맞서야 합니다. 그대로 끌려가면 죽습니다. 예수 믿다가 자살하는 사람들이 그런 경우입니다. 어두운 터널에 오래 있으면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악에 맞서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신앙은 죽고 사는 일입니다. 신앙은 목숨 거는 일입니다.
영적인 공격은 영적인 사람에게 옵니다. 사탄은 영적인 사람을 공격하지 육적인 사람은 건드리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을 진지하게 하는 사람일수록 사탄의 공격이 거셉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두운 터널에 갇히고 길이 좁아져 답답하게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그 기분, 그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벗어나기를 힘쓰십시오. 십자가의 길은 자기 부인의 길입니다. 자기 부인이 되지 않으면 때마다 자신의 감정에 휘둘리고 자신을 에워싼 상황에 낙심하게 됩니다. 그때가 눈을 들어 십자가를 바라볼 때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어 있는 자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나는 죽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우리는 그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조정민, 『조정민의 답답답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