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선선한 바람과 발치에 밟히는 은행 열매 냄새에 가을이 오긴 왔구나라고 느끼고 있는 에디터 E입니다. 높은 하늘과 붉은 노을을 보면서 연신 사진을 찍기도 하고요, 한가위라고 가족 모임과 성묘를 다녀오며 함께함의 의미도 되새겨보기도 하고 있어요.

오늘도 우리에게 꼭 필요할 한 장을 꺼내 왔어요. 이제 확인해 볼까요? 💌

무엇을 남기고 싶나요?

구독자님은 삶의 목표가 있나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나요? 전 예수님을 제대로 몰랐을 땐 그냥 주어진 인생 남에게 폐 안 끼치고 열심히 살다가 죽으면 잘 산 것이라 생각했어요. 예수님을 믿은 후로는 그리스도의 자녀, 왕 같은 제사장, 예수님의 제자 등의 수식어에서 오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가 생겼지요. 식상하긴 해도 '무엇을 하더라도 오로지 주님을 위해서' 하자는 마음가짐이 깊게 뿌리내렸습니다. 비록 매 순간을 그렇게 살지는 못하더라도요.

구독자님은 어떤가요? 혹시 살면서 남기고 싶은 업적이 있나요? 100년을 사신 인생의 스승도 한때 그런 고민을 한 적이 있어요. 그의 생각을 살짝 엿보기로 해요.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천추(千秋)에 사업과 업적을 남기겠는가. [...]

그러나 지극히 부족한 나에게도 한 가지 가능한 길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아낌을 받는 사람’이 되어 보자는 마음이다. 유명하거나 세력 있는 사람이 되기 전에 가정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직장에서 만나는 내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아낌을 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작은 마을로 이사 갔을 때 이웃사람들이 아껴 주고, 내가 직장을 떠날 때 동료들이 마음으로부터 아쉬워하며, 직장과 사업 터를 옮길 적마다 이웃과 친구들로부터 아낌 받는 존재라고 느낀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를 아껴 주는 사람들의 마음에 오래 오래 나의 인상과 마음이 남겨질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즐겁고 감사한 일인가. 지극히 적은 수의 사람들일지라도 진심으로 나를 아껴 준다면 그것으로 족할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지위와 권세로 많은 사람의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생의 마지막을 가정해 볼 때, 자신과 더불어 삶을 같이하고 있는 이웃들에게 참으로 아낌을 받는 사람이야말로 보람 있는 인간이며 값있는 삶을 살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무엇인가 영원한 것을 찾다가 죽고 싶다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상대에서 절대를, 시간에서 영원을 찾아 살도록 창조된 존재라고 믿는다. 모든 노력과 가능성은 그것을 위해 존재하며 온 힘과 생명도 그것을 위해 바쳐져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그 일을 위해 예술이 있었고 진리가 나타난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인류의 모든 수고와 노력이 이미 영원의 제단에 바쳐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여기에서 영원한 것을 위해 살고 싶다고 한 것은 결코 명성이나 지위나 수입과 관계되는 내용이 아니다. 또 그것을 통해 이름을 길이 남기고 싶다는 욕망에서 하는 말도 아니다. 아낌을 받는 사람이 사랑과 봉사의 생활에서 연유된 것이라면 영원을 위한 생활은 끝없는 탐구와 갈망의 삶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고통일 것이며 끝없는 순례의 생활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심한 고독과 예외자(例外者)로서의 번뇌가 찾아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이 영원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시간적 존재이며, 유한의 잣대로 무한을 재야 하는 운명이다. 이러한 영원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인간은 가장 지성스러운 노력을 다해 왔다. 이 영원을 향한 갈망과 기대 없이 어떻게 생을 지속해 갈 수가 있겠는가.

누군가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내게 묻는다면 ‘영원을 향한 사랑’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김형석, 『고독이라는 병』